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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오소마츠상

[이치카라] 자기기인 - 1

 

자기기인 (自欺欺人)

: 자신을 속이고 남을 속인다.

 

+++

 

마츠노 이치마츠는 글 쓰는 게 좋았다.

중학생 때엔 할 일이 없다고 느껴질 때마다 다다미 바닥에 엎드려서 아무 노트나 펼쳐놓고 거기에 자신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들로 문장을 만들어 가는 게 너무 행복했다.

고등학생이 되어서 어떠한 이유로 글 쓰는 걸 포기했지만, 마음에 드는 문장 같은 걸 보거나 들으면 모조리 적는 버릇은 바뀌지 않아서, 그것들로 이루어진 이야기가 머릿속에서 포화상태가 될 때 즈음엔 글을 쓰고 싶어 견딜 수가 없었다.

그럼 어디에 이것들을 쏟아낼까, 하다가 만들게 된 게 개인홈페이지였다. 이 곳이라면 형제들에게 들키지 않고, 익명의 사람들만 보게 되니 괜찮았다.

통장 잔고를 탈탈 털어 산 노트북엔 암호를 걸어놓았고, 습작노트는 최대한 조그마한 걸사서 항상 들고 다녔다.

이치마츠는 글을 쓸 때만큼은 완전한 현실도피가 되는 것 같아, 니트 생활을 하면서도 단편과 장편을 가리지 않고 틈틈이 글을 써내려갔다.

그런 생활을 지속하던 중에, 한 통의 메일이 날아들었다.

 

[저희는 신생 웹소설 사이트---입니다. 이치코씨가 홈페이지에 연재하시는 작품들을 보고 감명을 받아, 저희 사이트에서 메인작가로서 연재하시는 것을 제안 드리고 싶습니다. 저희와 함께 하실 의향이 있으시면 답장 부탁드립니다.]

 

?”

 

이치마츠의 입에서 외마디가 튀어나왔다.

 

뭐야 이게......’

 

그 메일을 읽은 후 별 생각이 다 들었다.

어쨌든 글을 쓰는 게 좋았지만 그걸 남에게 보여주는 직업으로 삼는다는 것은 진작 포기했을 터인데, 막상 기회가 오니 수상하다는 생각보다 먼저 심장이 뛰는 게 느껴졌다. 흥분을 가라앉히고 손을 간헐적으로 떨며 답장을 적어나갔다.

 

-

 

약속된 날이 되자 이치마츠는 도망가고 싶어졌다.

기대에 부응하지 못할 것 같았다.

알고 보니 이런 쓰레기라 비웃진 않을까, 장난이었다고 하지 않을까, 여러 생각을 하느라 전 날에 잠도 못 잤지만, 발은 결국 그 쪽을 향했다.

 

이치마츠! 쫙 빼입고 어디가? 어차피 이거 아냐~?”

 

오소마츠가 상스럽게 돌리는 손동작을 취하며 말하자, 쵸로마츠는 이치마츠가 너냐!’ 라며 츳코미를 걸었지만 무시당했다.

 

“...그런 거 아냐.”

 

짧은 대답을 남기고 이치마츠가 문을 나서자, 오소마츠는 정색하며 말했다.

 

저 녀석... 평소보다 목소리 조금 고양된 것 같지 않아?”

 

? 난 모르겠는데?”

 

쵸로마츠는 형의 분위기가 바뀐 것에 당황하며 대답했다.

골똘히 생각하던 그는, 깨달음을 얻은 표정을 지으며 주먹으로 손바닥을 탁 쳤다.

 

알았다! 산책이야!”

 

별 거 없잖아!!”

 

동생의 주먹이 형의 턱을 가격했다.

 

-

 

약속장소에 왔으면서 다른 사람을 찾듯이 한참을 두리번거리는 놈을 빤히 쳐다보던 이치마츠는 눈이 마주치는 순간 꾸벅 인사를 했다.

 

혹시... 이치코씨!?”

 

남자는 조금 놀란 것 같았다.

 

“...필명입니다.”

 

이치마츠는 대답 같은 것을 툭 뱉었다.

남자는 놀란 것에 대해 사과를 하며, 자신이 대표라고 설명했다.

신생 사이트라 대표가 직접 나오는 건가...’하고 생각하며 서로 소개를 하는데, 완전 여자인 줄 알았다느니, 남자일 줄은 상상도 못했다느니, 그가 계속 성별얘기를 하자 이치마츠는 짜증이 섞인 말을 내뱉었다.

 

여자든 남자든 뭔 상관입니까.”

 

, 실수했다.’

초면에 이런 식으로 말을 했으니 답도 없는 쓰레기라고 생각하겠지 싶어 대표의 반응을 살폈는데, 그는 곰곰이 생각하는 표정을 지을 뿐이었다.

 

그렇죠! 성별은 딱히 상관없겠죠!”

 

갑자기 밝아진 분위기에 이치마츠가 조금 당황하고 있는데, 그 대답을 기다렸다는 것처럼 대표는 몇 장의 서류들을 꺼내며 말을 술술 읊었다.

 

일단 드릴 수 있는 금액은 이 정도고요~ 추천수가 올라가면 그에 따라 더 올라갈 수 있고요~ 일주일에 두 번, 원하시는 요일로!

앞으로 연재하실 작품의 주제는 이 쪽에서 사이트 특성에 맞는 걸로 정해드리니 그거에만 맞춰서 써주시면 됩니다.

더 자세한 건 이 쪽에 적혀있고, 계약서는 여기. 어떠세요?”

 

주제를 정해준다고...?’

 

이치마츠는 약간 께름칙한 기분이 들어 미간을 찌푸렸지만, 서류들을 읽다보니 조건도, 금액도 좋아보였다. 어쨌든 일정한 금액은 확실히 통장으로 들어오는 거니까, 주제가 뭐든 심심풀이로 대충 써서 건네면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할게요.”

 

-

 

씨발, 씨발!!! 좆같은...!”

 

이치마츠는 집 앞의 쓰레기통에게 욕을 퍼부으며 쾅쾅 하고 걷어찼다. 다 핀 담배꽁초가 발밑에 수북했지만 화가 가라앉지 않아 새 것을 꺼내 다시 불을 붙였다. 계약하고 하루 만에 엄청난 후회감에 휩싸였다. 좀 더 자세히 알아보지 못한 자신의 탓이었지만 화가 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내 병신 같은 글 따위에 감명 받았다고 했을 때부터 눈치를 깠어야 했는데!’

 

담배연기를 세차게 빨아들이며 생각했다.

서류에 쓰여 있는 BL이라는 단어의 뜻은 몰랐지만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집에 가서 검색을 해보았다. 그랬더니 생전 처음 보는 것들이 눈앞에 펼쳐져서 정신이 나갈 뻔했다.

 

미친 새끼, 그냥 야설도 아니고 게이야설을 쓰라고!? 여자가슴도 본 적 없는데 그딴...!”

 

돌연 머릿속이 냉정해졌다.

성행위 묘사는 대체 어떻게 해야 하나, 인물 구성은 어떻게 해야 하나, 애초에 보통 그런 류의 소설의 레퍼토리는... 같은 생각을 하다가 다시 짜증이 확 올라와서 속으로 욕을 하며 연신 쓰레기통을 차댔다.

한참을 그러고 있으니 지쳐서 고개가 푹 숙여졌다. 계약은 했고, 다음 주부터 연재를 해야 한다.

 

~~~짜 죽고 싶다......’

 

평소에도 하루에 수 천 번 생각하던 거지만 오늘따라 더욱 와 닿았다.

  

그 후의 일주일은 새로움의 연속이었다.

동성끼리 연애감정을 느낀다는 것 자체를 생각 해 본적 없는 이치마츠는 일단 관련된 책을 몇 권 사 들이고 나름대로 연구를 했다.

완전 별세계라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섹스 방법을 제외하면 남자와 여자가 하는 연애와 별 다를 바 없게 느껴졌다. 어떻게든 되겠지 싶은 마음으로 글을 대강 끼적여서 건넸지만, 솔직히 아무도 안 봐서 망해버렸음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현실은 이치마츠가 나름 상식이라고 갖고 있던 걸 산산조각 내었다.

 

이딴 걸 왜 보는 거야!?!?”

 

조금씩이지만 달리는 댓글들과 올라가는 추천수를 보고 이치마츠는 경악했다.

여자든 남자든 이런 걸 찾아본다니, 어떤 사람들인지 상판을 보고 싶었다.

그런데도 한편으로는 자기가 쓴 글을 수많은 사람들이 봐준다는 것이 못 견디게 기쁘다는 것이 그를 더욱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동생이여

 

확인해보지 않아도 형제 중 누구인지 예상되는 목소리가 들리는 순간 이치마츠는 황급히 노트북을 닫았다. 대답은 하지 않고 카라마츠를 흘겨보았다.

동생의 눈총을 받으며 카라마츠는 눈을 살짝 감고 읊조렸다.

 

후후, 오늘 저녁은 핏물이 흐르는 고깃덩이를 지옥의 불길에...”

 

그냥 저녁은 야키니쿠니까 먹으러 가라고 할 순 없냐, 쿠소마츠.”

 

이치마츠는 역겨운 문장이 이어지기 전에 잘라버리고, 하아- 하고 한숨을 쉬며 카라마츠의 어깨를 일부러 툭 치고 지나갔다.

 

-

 

"문장은 끝까지 말하고 싶었는데..."

 

풀죽는 이유가 미묘하게 어긋난 것 같았지만 본인은 눈치채지 못했다.

카라마츠도 방을 나서려는데 발에 툭 걸리는 게 있어 시선을 내려보니 이치마츠의 수첩이 떨어져 있었다. 

 

"오, 그 녀석이 매일 갖고다니는 거잖아."

 

카라마츠는 수첩을 주우려고 몸을 숙였다.

수첩이 펼쳐져서 떨어져 있었기에 수첩을 집는 과정에서  본의아니게 내용이 카라마츠의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카라마츠는 그대로 굳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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